예신 모드 ON! 서울웨딩박람회에서 나도 모르게 계약한 사연
“진짜 오늘은 그냥 정보만 알아보자.”
서울웨딩박람회 가는 길, 남자친구와 나란히 걷던 내 입에서 나온 첫마디였다. 결혼 준비를 막 시작한 예신으로서 설레기도 하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기도 했던 시기. 친구들이 하나같이 “박람회 가보면 감 잡힌다”고 했기에 별 생각 없이 신청한 박람회였다. 단지 정보를 알아보러 갔을 뿐인데, 그날 나는 두 개의 계약서에 사인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서울 강남의 행사장이었고, 주말이라 그런지 입구부터 웨딩드레스 입은 마네킹과 스냅 촬영 샘플 앨범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입장할 때 받은 사은품부터 신혼부부 맞춤 캘린더, 웰컴 드링크까지… 괜히 기분이 업됐다. 남자친구도 평소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부스들을 돌아다녔고, 나는 내심 흐뭇했다.
첫 번째로 발길이 멈춘 곳은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패키지 상담 부스. 상담해주신 실장님이 너무 친절하셨고, 나 같은 초보 예신에게 이것저것 조목조목 잘 설명해주셨다. 패키지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스튜디오 촬영 때는 어떻게 준비하면 좋은지, 드레스 투어는 몇 번 가능한지…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메모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견적서를 받아봤는데, “오늘 계약하면 드레스 투어 2회 → 3회로 업그레이드, 리허설 메이크업 무료 제공”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사실 아직 스드메를 어디서 해야 할지 정하지 못한 상태였고, 견적도 대강 인터넷으로만 알아봤을 뿐이었다. 그런데 서울웨딩박람회 한정 혜택이라는 말에,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조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점점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게다가 실장님이 보여주신 실제 촬영 샘플들이 하나같이 내 스타일이었던 것도 한몫했다.
“조금 더 생각해볼까요?”라는 내 말에, 남자친구는 의외로 담담하게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여기서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라며 등을 밀어줬다. 그렇게 우리는 그 자리에서 스드메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소정의 계약금도 결제했다. 솔직히 아직도 좀 얼떨떨했다. 계획 없이 갔는데 이렇게 빨리 결정하게 될 줄이야.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음으로 간 예식장 상담 부스에서 또 한 번의 사건(?)이 벌어졌다. 이건 진짜 말 그대로 ‘계획에 없던 계약’이었다. 우리는 서울, 경기권 예식장을 몇 군데 보고 있었고, 박람회에서 간단히 리스트 정도만 얻고 나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떤 부스에서 상담을 받아보니, 내가 예전에 핀터레스트에서 저장해놨던 웨딩홀 이미지와 아주 비슷한 홀이 눈에 들어왔다. 그날 그 홀은 행사장에서 단독으로 상담을 진행하고 있었고, 직접 촬영한 영상도 보여주면서 실제 분위기를 상세히 설명해줬다.
시간대와 인원, 식사 메뉴, 예식 구조까지 자세히 듣다 보니… 또 마음이 흔들렸다. 특히나 ‘이날 박람회 통해 계약하면 홀 대관료 할인 + 폐백실 무료 + 식사 시음권 제공’이라는 조건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스드메 계약으로 약간은 흥분 상태였던 나는, 어느새 “혹시 가능 날짜 확인해주실 수 있나요?”라고 묻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희망했던 토요일 오후 3시, 딱 하나 비어 있었다. 진짜 우연이었고, 그 순간 이건 운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친구와 조용히 눈빛 교환을 하고, 우리는 두 번째 계약을 마쳤다. 나도 놀라고, 남자친구도 놀란 눈치였다. 이렇게까지 빠르게, 한 번에 결정을 내릴 수 있을 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불안하거나 후회되기보단, 오히려 ‘이제 진짜 시작이구나’ 하는 두근거림이 더 컸다.
집에 돌아가는 길, 무거운 사은품 가방을 들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가벼웠다. 물론 하루 만에 중요한 결정을 두 개나 한 게 무모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날 나는 나보다 더 신중한 남자친구가 먼저 “좋다”고 말했던 것에 큰 신뢰가 생겼고, 웨딩박람회 덕분에 머릿속의 수많은 물음표들이 느낌표로 바뀌는 순간을 경험했다.
이후 다른 친구에게 추천을 해주면서도, 난 꼭 한마디를 덧붙였다.
“너도 마음 단단히 먹고 가. 나처럼 나도 모르게 계약하고 올 수도 있으니까!”